사상 최대 IPO 잔치, 그 아래 번지는 다섯 개의 균열
앤트로픽·오픈AI·스페이스X가 같은 해에 사상 최대 규모로 증시 문을 두드린다. 화려한 잔치다. 그런데 잔치를 떠받치는 자금줄과 그 아래 시장 곳곳에서 균열음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흘러온 구조 전체의 이야기다.
01자금줄이 바뀌었다 — 빅테크의 빚
오랫동안 빅테크의 인공지능 투자는 "벌어들인 현금으로 한다"가 상식이었다. 이제 아니다. 빚으로 짓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에 쏟아붓는 돈이 벌어들이는 현금을 넘어서면서, 채권 발행으로 모자란 자금을 메우고 있다.
규모가 가파르다. 2025년 5대 빅테크의 채권 발행액은 직전 5년 평균의 네 배를 넘겼고, 2026년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오라클이 한 번에 180억 달러를 찍고, 메타가 2023년 이후 최대 규모를 발행했으며, 알파벳은 100년 만기 채권까지 동원해 1년 새 빚을 850억 달러 넘게 불렸다.
문제는 신용시장의 반응이다. 늘 현금이 넘치던 최우량 기업들이 갑자기 빚더미를 쌓는 낯선 광경에, 채권 투자자들은 불안해한다. 오라클은 빚을 더 낼 거라는 사실을 제때 알리지 않았다며 채권 투자자에게 소송까지 당했고, 신용등급은 정크(투기등급) 바로 두 단계 위까지 내려와 있다.
02좀처럼 안 잡히는 물가
그 빚을 갚아야 할 환경은 점점 나빠진다. 3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튀어 올랐고, 월간 상승폭은 2022년 이후 최대였다. 연말에는 또 다른 물가 지표가 목표(2%)의 두 배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소비자가 바라는 건 물가 하락인데, 시장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물가가 식지 않으면 금리도 내려갈 수 없다.
03전쟁과 유가
물가를 다시 끌어올린 핵심 변수는 전쟁이다. 2월 시작된 이란 전쟁이 유가를 한때 배럴당 115달러까지 밀어 올렸고, 미국 휘발유 값은 3년여 만에 처음으로 갤런당 4달러를 넘었다.
휴전으로 잠시 진정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원유가 지나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막히면 충격은 반복된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가 따라 오른다는 건 오래된 공식이다.
04내려갈 줄 알았던 금리
연초만 해도 시장은 올해 금리가 네 번 내려갈 거라 기대했다. 지금은 한 번으로 줄었다. 연준은 금리를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물가는 뜨거운데 고용은 식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든다.
일본은행마저 수십 년간의 초저금리에서 벗어나 금리를 올리는 중이다.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 전 세계 돈값이 비싸지는 방향이다. 먼 미래의 이익에 기대어 평가받는 성장주에 가장 불리한 환경이다.
05사모시장의 환매 제한
가장 또렷한 균열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왔다. 개인과 기관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빼주겠다"고 약속하며 자금을 모은 사모 대출 펀드들이, 그 약속을 막기 시작했다.
한 대형 운용사는 250억 달러 펀드에 환매 요청이 몰리자 요청액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만 돌려줬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했고, 업계 최대 운용사는 6월 들어 처음으로 환매에 빗장을 걸었다. 블루아울, 블랙록, 모건스탠리 등에서도 기록적인 환매 요청이 이어진다.
구조의 문제다. 펀드는 분기마다 현금을 빼주겠다 약속하지만, 실제 굴리는 자산은 중소기업에 빌려준 돈이라 당장 팔기 어렵다. 평소엔 괜찮다가 모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려 하면 막힌다. 약 2조 달러로 불어난 이 시장을 미국 의회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가
다섯 가지는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돈이 흘러온 구조가 바뀌었다는 하나의 신호다. 자금줄은 '벌어서'에서 '빌려서'로, 그리고 '쉽게 환금되지 않는 약속'으로 옮겨갔다. 그사이 돈값(금리)은 비싸졌고, 그 원인인 물가·전쟁·유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긴 시간 뒤의 이익에 건 베팅을 빚으로 떠받치는데 돈값이 더는 내려가지 않을 때, 균열은 약속한 유동성이 진짜가 아니었던 곳에서 먼저 터진다. 환매 제한이 가장 먼저 나온 이유다.
닷컴 시절의 메아리가 들린다. 그때도 통신망을 빚으로 깔았다. 기술이 가짜였던 게 문제가 아니라,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전에 빚 갚을 날이 먼저 왔던 게 문제였다.
질문은 'AI가 진짜냐'가 아니다. 비싼 돈과 긴 베팅, 그리고 막힌 출구가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