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이 확전되는 가운데 유가가 다시 110달러를 터치했다. 종전을 기대하며 반등했던 시장은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 직후 다시 하락 전환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 협상 소식에 잠깐 숨을 돌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본질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시장은 전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실적이 엄청날 것이며, 반도체 사이클이 최소 2027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터졌을 때 1~2달이면 하락분을 모두 상쇄했다는 논조를 들고 나와, 떨어지면 더 사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이미 실적은 주가에 반영됐다. 컨센서스를 크게 상회하는 서프라이즈가 아닌 이상 한국 반도체 주가의 추가 랠리는 없다. 오히려 너무 높아진 기대치가 독이 된다. 가이던스 한 줄 실망스러우면 급락이 나오는 구간이다. 시장은 이미 AI 버블론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고, 미국 시장의 체력이 약해졌음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반도체는 다르다"고 우기는 건 위험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교과서에서나 보는 거라고?
모두가 스태그플레이션은 역사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번 상황을 스태그로 보기 어렵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걸 보라.
유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원자재 수급이 꼬이면 공장은 멈춘다. 멈춘 공장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줄 수 없다. 유가는 물가를 자극하고, 소비 위축은 경기 침체로 간다.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멈추는 것. 이게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의 아닌가.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사전에 "이건 스태그다"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다 겪고 나서 이름을 붙인 거다.
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
현재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4.3%, 2년물은 3.8%. 시장이 앞으로의 금리 인하 경로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내 인하 기대는 사실상 소멸했다. 30년 모기지는 6.38%까지 올라 주택시장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내려가지 않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연준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연준은 두렵다.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자니 이미 빡빡한 금융 환경에서 기업과 가계가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하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관세와 유가가 동시에 밀어올리는 물가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월이 "아직 대응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한 건, 뒤집어 말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백에 가깝다.
이란은 맞고만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하든 말든 미국은 빠져나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중동 원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건 맞다. 그런데 동맹국들은? 유럽은? 아시아는? "알아서 하라"는 말은 동맹 네트워크의 균열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란은 맞고만 있지 않는다. 이미 걸프 6개국의 정유시설, 미군 기지,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과 드론을 쏘고 있다. 다음 타격이 주변국에 있는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될지, 카타르의 LNG 터미널이 될지, 사우디의 해수담수화 시설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하나다. 미국이 때리면 이란도 때린다.
미국이 저렇게 얻은 것 하나 없이 빠져나가면 이란은 어떻게 변할까. 핵을 포기할까? 탄도미사일을 포기할까? 오히려 "핵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교훈을 얻고 핵개발을 가속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 전체의 핵 도미노가 시작될 수 있다.
진짜 리스크: 트럼프 자신
미국 유권자들이 중간선거에서 트럼프가 잘했으니 공화당을 뽑아주자고 할까?
역사적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도 연속적으로 민주당에 패배하고 있다.
전쟁 피로, 유가 폭등, 생활비 압박이 겹치면 중간선거는 참패로 갈 수 있다.
트럼프가 탄핵 저지선을 지키지 못하는 수준으로 패배하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가 가만히 있을까?
잘 생각해보라.
이 사람은 2020년에 바이든에 패배하고 부정선거를 외쳤고,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겼다.
트럼프가 정치적 위기에 몰리면 무슨 선택을 할지 상상해보라
그 충격은 달러의 기축통화 신뢰를 흔들고, 미국채 안전자산 프리미엄을 깎아먹으며, 세계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시장이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가장 큰 리스크는 이란이 아니라 트럼프 자신일 수 있다.